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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찾는 방법 by 이연
    아하 에세이 2023. 5. 18. 10:30

     

    나는 언제나 삶이 지루하다는 말을 내뱉곤 했다. 이제는 그런 불평을 하지 않는다. 삶은 시련이자 수련이다. 그게 늘 재미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안에서 의미를 찾는 법은 딱 하나, 어제보다 더 나은 영혼을 갖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오늘의 영혼을 살피고, 내일의 내가 더 나아갈 수 있는 지점을 찾는다. 언젠가는 내가 꿈꿔온 모습보다 더 멋진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1. 일기 쓰기

    한 시인과 일기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작가란 무릇 죽어서도 누군가가 노트를 뒤적일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일기를 남겨두고 싶지 않다고 했다. 흥미로운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게 두려우면 적당히 기운이 남은 노년에 전부 태우면 될 일 아닌가. 혹은 내가 죽은 후 누군가 노트를 본다 해도 나는 크게 상관이 없다. 나라는 인간에게 대단히 비밀스러운 구석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보다 일기를 굉장히 실용적인 목적으로 쓴다. 그저 자신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나는 아침에 일기를 쓰는 편이다. 아침부터 쓸 말이 뭐가 있겠냐 싶겠지만 생각보다 할 말이 쏟아져서 놀랄 수도 있다. 자는 동안 머리에 흩어진 꿈의 조각들, 그리고 오늘 해야 하는 일들, 어제를 보내고 남은 기억의 찌꺼기들. 인간이 가장 신날 때가 언제인지 떠올려보면, 누군가가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줄 때라고 할 수 있다. 종이는 기꺼이 그 역할을 해준다. 나는 일부러 펜을 들고 다이어리에 손으로 직접 일기를 적는 편이다. 그래야 그날의 글씨체도 함께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쩐지 아침부터 신이 나면 글씨에도 그런 설렘의 기운이 느껴진다. 불만이 가득하면 글씨 또한 삐죽하고 못생겼다. 혹은 차분함과 깨달음이 가득한 때에는 곧고 바른 글씨가 나타난다. 내용 말고 글씨의 모양만으로도 마음의 상태를 살필 수 있다. 일기를 통해 오늘의 나를 알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나를 알기 위해 과거부터 지금까지 대단한 것들을 떠올리거나 내뱉을 필요는 없다. 오늘의 모습만 매일 살펴도 스스로를 알기에 충분하다.

     

    2. 일기 읽기

    고백하자면 나는 일기를 읽기 위해 쓴다. 주로 힘들 때나 지루할 때 일기를 꺼내어 읽는다. 과거의 반복된 삶의 패턴을 속에서 실마리를 찾기도 하고, 지금만 그렇지 않다는 생각에 위로를 구하기도 한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일도 비슷하다. 유튜브 스튜디오에 들어가면 채널 데이터를 기간별로 조회할 수 있다. 추이를 살펴보면 잘 됐던 때와 잘 안 되던 때가 비슷한 비율로 분포하고 있다. 지금 내 유튜브 지표는 조회 수, 구독자 수, 시청 지속 시간, 수익 순서로 전부 하향세다. 그럼에도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건, 과거에도 이런 때가 있었다는 걸 데이터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5년 차쯤 되니 얻게 된 의연함이다.

     

    운동을 꾸준히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매일 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어제와 오늘의 느낌이 다르다. 하루하루 더 나아지는 게 아니라 어떤 때는 정말 잘되고 어떤 때는 몇 달 전보다 못하기도 한다. 그걸 처음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계속 거듭하다 보면 이게 그저 오늘의 컨디션일 뿐이구나하고 의연해지게 된다. 꾸준히 해서 기록이 쌓이면 컨디션에 따른 기복임을 알 수 있고, 그러면 사사로운 일에 일희일비를 덜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우상향 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지표가 좋지는 않지만 과거의 나보다는 덩치가 크다. 삶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누구나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때가 온다. 그때 크게 실망하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사람이 정말로 멀리 갈 수 있다.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믿음과 용기는 쉬지 않고 걸어온 발자국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내게는 일기가 바로 그 발자국이다.

     

    3. 살아가기

    일기를 쓰고 읽는 일에서만 그치면 안 된다. 그 안에서 깨달은 것을 토대로 힘껏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자아성찰을 많이 하는 만큼 스스로에게서 실망스러운 구석도 많이 발견하곤 한다. 어제 내가 발견한 것은 내가 사람들에게 잘해주면서 생색을 많이 낸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우리 엄마가 늘 아빠에게 하는 소리와 같았다. “당신은 가만히 있으면 고마울 일을 꼭 생색을 내서 하나도 안 고맙게 만들어!” 통쾌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는데, 아빠와 같은 행동을 나도 하고 있었다니 조금 부끄러웠지만 이제라도 깨달은 게 어딘가 싶었다. 그래서 어제는 친구에게 친절을 베풀며 생색 참는 연습을 했다. 입에서 자꾸 어때, 나 같은 사람 없지?” “고맙지?” 따위의 말이 비집고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는데, 어쩐지 전보다는 어른스러워진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누구나 스스로의 단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개인의 성숙도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발견하고, 살아온 흔적을 읽다 보면 그 안에서 모난 부분을 찾게 된다. 하지만 거기서 상처만 입고 끝나면 안 된다. 더 날렵하게 다듬어서 나만의 강점으로 만들거나, 혹은 부드럽게 다듬어서 사람들과 잘 어우러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나는 자기주장이 센 사람이다. 그게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내 의견을 전할 때에는 큰 장점이 됐지만 동시에 사람들에게 많이 상처 주고 그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내 마음에 적당한 브레이크 세우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 내가 던지는 말이 나에겐 아무렇지 않지만 사람들에겐 2, 3배 세게 닿을 수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자신을 타인에게 맞추다보면 자기 자신이 흐려지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성격은 형상기억합금과 같아서 묶어 놓은 장치가 없다면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내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아는 것, 그리고 그에 맞는 틀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나의 원래의 모양을 인식할 때 가능한 일이다.

     

    자신과 연애를 한다고 상상해보자. 상대를 알아야 그를 위한 배려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단점을 수용하고, 나 또한 기꺼이 기대면서 성장하는 것이 사랑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타인에게 친절하려고 하지만 자신에게는 그러지 못한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만큼,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오늘의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는가? 타인에게 대하듯 스스로에게도 다정했는가?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희생을 감수한 적이 있는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노력을 했는가?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 질문이다. 나는 오늘을 진지하게 살아냈는가? 매 순간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듯 살아내면 굳이 일기를 쓰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나는 내 글씨체를 구경하는 일이 즐겁기에 내일도 즐겁게 일기를 쓸 생각이다.

     

     


    글. 이연

    2018, 자신만의 길을 걷기 위해 긴 시간 디자이너로서 일해오던 회사를 나왔다. 손에 쥔 것은 용기뿐이었기에 가난하고 외로운 시간 속에서 자신을 오롯이 마주하는 한 해를 보냈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기회를 가져다준 그해 사계절의 기억을 엮어 오리지널 그림 에세이매일을 헤엄치는 법을 그리고, 썼다.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연 작가의 글이 매월 1회 연재됩니다.(총 3회)

    1화. 나를 찾는 방법(현재글)
    2화. 나와 맞는 일을 찾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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