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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상처받지 않는 인간관계를 위한 세 가지 루틴 by 이광민
    아하 에세이 2023. 6. 22. 16:08

     

    MBTIISTP. 이걸 들은 주변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E 유형이 아니고 I 유형이라고요??” 아니, 내가 I 유형인 게 왜 이상한 거지? 여러 번 검사해 봐도 나는 IE 중에서 항상 I였다. 정신과 의사 입장에서도 나는 내가 I라고 생각한다. 물론 인간관계 패턴이 예전과 달라지기는 했다. 예전에는 은근히 스스로를 소외시켜도 잘 지내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사람도 많이 만나고 나름 유머러스할 때마저 있으니까. 관계 양상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는 혼자 있을 때가 세상 제일 편하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여전히 에너지도 쓰이고 긴장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분명 I 유형이다.

     

    사람 만나는 것이 때론 귀찮고 신경이 쓰이는데도 계속 사람을 만나는 건 인간관계 자체가 나에게 필요해서다. 사회적으로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얻는 인정관심이 필요하다. 그런 인정과 관심은 나의 자존감에 일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자존감에는 사회적 역할이나 소중한 관계, 가치나 의미, 과거의 충족된 경험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그중 인간관계를 통한 인정과 관심은 나의 자존감을 지속해서 안정적으로 채울 수 있는 주원료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니까.

     

    다만 인간관계에서 인정과 관심을 매번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실전에서는 그렇지 않다. 서로 소중한 관계로 이어진 가족이나 오랜 친구가 아닌, 낯선 관계나, 피상적인 관계, 서로 눈치를 봐야 하는 관계는 총칼이 없다 뿐이지 치열한 힘겨루기가 존재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밀릴 때 두려운 것은 스스로 입을 상처다. 인간관계에서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다. 내 사회적 자존감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입으면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겁난다. 그러면 더 자기 안으로 숨어들어가 버린다.

     

    인간관계에서의 루틴이란 결국 내가 사람을 만나면서 상처를 줄일 수 있는 나름의 체계적인 습관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 습관이야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대원칙이 있다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자신을 남과 비교하는 상황은 피한다.

    무엇보다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상처는 피해야 한다. 이런 상처는 주로 주변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상황에서 생긴다. 상대방은 딱히 나에게 상처 줄 의도가 없었지만, 내가 상대방을 경쟁자로 인식하면서 남보다 떨어지는 자신을 지레 작게 느껴 버린다. 이건 일종의 자동적인 반응이라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생긴다. 일종의 자격지심이면서 자승자박이다. 불필요한 비교는 이기려 하기보다 살짝 피해야 한다.

    내 이야기로 예를 들자면, 나는 개인 의원을 운영하는 정신과 선생님들과의 자리는 될 수 있으면 피한다. 다양한 직군이 섞여 있거나 단둘이 만나는 사적인 자리는 괜찮겠지만, 같은 직군의 비슷한 상황의 사람 여럿이 같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현실적인 상황을 비교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나 스스로 상처 입는다. 대표적인 비교는 경제적인 거다. 돈을 얼마 번다거나 좋은 집에 좋은 차를 샀다거나 이런 것 말이다. 지금의 내 삶은 충분히 의미 있고 만족하는데도 막상 비교하기 시작하면 배알이 꼴린다. 상대방의 잘못도 아니니까 내가 알아서 잘 피해야 한다.

     

    2) 착취당하는 관계는 끊는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의도적으로 나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다. 상대방이 악의적이든 아니든 내가 반복적으로 이용당하고 착취당하는 관계는 위험하다. 요즘 이런 관계를 가스라이팅이라고 한다. 이런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는 이미 정해져 버려서 피해자는 관계를 지속할수록 피해가 늘어난다. 그렇게 상처가 깊어지고 있는데도 막상 나는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

    가스라이팅이 벗어나기 힘든 이유는 우선 내가 착취당하고 있다는 걸 잘 모르고, 알아도 이 관계를 끊어내면 내가 손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가스라이팅은 한순간으로 판단할 수 없다. 꾸준히 지속된 관계에서 그 관계의 흐름을 되돌아봐야 한다. 관계의 연속선상에서 나도 모르게 입고 있었던 분명한 피해가 있다면 그 관계가 가스라이팅이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가스라이팅이라고 판단되었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야 한다. 물론 그간의 관계가 아쉬울 수도 있고, 내가 입을 미래의 상처가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상처로 인한 피해 가치는 내가 포기해야 한다. 맹수가 쫓아올 때 주저하고 뒤를 돌아봤다가는 잡아먹히고 만다.

     

    3) 작은 상처는 감수한다

    가스라이팅은 그 관계의 상처가 처참하기에 무조건 끊고 도망가야 한다. 그런데 모든 인간관계에서 작은 상처마저 없는 관계란 없다. 가스라이팅에서와는 달리 이런 작은 상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견뎌 내야 하는 상처다. 모든 사람이 항상 나를 소중히 대해줄 수는 없다. 반대로 나 역시 때로는 누군가에게 작은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런 상처는 대부분 에서 발생한다. 비난이나 실망이 포함된 가벼운 말들은 마음에 깊은 상처는 아니더라도 자잘한 흠집을 만든다.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듣곤 하는 불편한 말들이 있다. 내 성격에 대해서일 수도 있고, 결과에 대해서일 수도 있고,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일 수도 있다. 나를 깊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쉽게 던지는 비난일 때도 있지만, 때론 소중한 사람이 하는 진심 어린 조언인 경우도 있다. 뭐가 되었던 이런 자잘한 상처를 두려워했다가는 나만 외톨이가 될 뿐이다. 작은 상처는 어쩔 수 없다. 쓸모없는 비난은 무시하고, 아프지만 필요한 조언은 받아들인다. 관계에서 고급 기술을 덧붙인다면 이럴 땐 적절한 가면을 쓰면서 감수해 보자. 작은 상처로 인한 아픔을 겉으로는 웃으며 감추고 흘려버리는 거다.

     

     

    MBTI에서 E 유형의 사람은 타인의 반응에 영향을 덜 받고 인간관계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그런 유형은 타고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반면 내가 가진 I 유형은 어쩔 수 없이 타인의 반응에 예민하고 그렇기에 에너지가 많이 쓰인다. 하지만 관계에 대한 욕심이 있으니 에너지를 써서라도 관계를 이어가는 거다. 그렇게 자존감을 위한 인정과 관심을 얻는다. 그런데 나와 유사한 유형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다. 비교적 피상적인 관계에는 에너지를 많이 쓰면서도, 막상 나에게 소중한 가까운 사람에게는 에너지를 아끼려는 거다. 그러면 관계의 실속이 떨어진다. 소중한 사람을 더 아껴야 하는데 언제 다시 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더 관계의 에너지를 퍼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건 철이 없어서 그렇다. 철이 들면 쓸데없는 욕심을 줄이고 내가 가진 소중한 것에 더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내가 가진 부족한 인간관계에서의 루틴도 조금은 더 다듬어지지 않을까?

     

     

    글. 이광민
    정신의학과전문의, 마인드랩 공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진료·임상교수를 지냈다. 환자들에게 정서적으로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해왔고, 정신의학 관련한 여러 의학적 지식을 대중적으로 공유하는 활동을 넓히고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하여 여러 범죄사건, 사회문제 등에 대한 정신의학적 자문을 해오고 있으며, 유튜브 ‘의학채널 비온뒤’ 등에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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