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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쓰’ 술플루언서의 해장법 탐구
    아하 에세이 2024. 3. 18. 18:37

    ⓒ박준하, 취할 준비

     

    마시는 일만큼 중요한 게 푸는 일

    술을 마신다는 건 부정적으로 보면 몸에 독소를 쌓는 일이다. 이 독을 잘 풀어내는 게 옳다는 건 누구나 아는데, 어떻게 풀어내는가가 문제다.


    나는 술을 마시면 ‘바나나우유’를 마시는 버릇이 있었다. 술을 과하게 마시면 뭐랄까, 장기 안에서 오돌토돌한 염증이 수백 개 나 있는데 그 틈으로 누군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을 뿜어내는 기분이 든다. 그때 바나나우유를 쪽쪽 빨아 먹으면 속의 열기가 가라앉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찾아보니 실제로 우유가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위벽을 보호하고, 바나나우유 같은 경우엔 당분이 들어 있는데 당을 보충해 숙취 해소에 도움을 준다고.


    얼큰한 탕은 기분은 개운하지만 국물 좀 마셨다고 숙취가 사라지진 않는다. 하지만 콩나물국은 좀 다른 녀석이라고 한다. 콩나물 머리에는 비타민B1이, 몸통에는 비타민C가, 뿌리에는 아스파라긴산이 들어 있다. 아스파라긴산은 숙취 원인인 아세트알데히드를 없애준다. 나트륨 배출 효과도 있다. 그런데 콩나물국은 의외로 호불호가 있어서, 국물 중에서도 꼭 베트남 쌀국수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방송국에서 인턴 기자로 일하던 시절, 방송국 기자들도 술을 참 무시무시하게 마셨는데, 그때 꼭 베트남 쌀국수로만 해장하는 선배 기자가 있었다. 쌀국수라는 게 실은 고기 국물이라 콩나물국보다 속이 든든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설에 할아버지 댁에서 큰 가마솥을 걸어 소머리를 삶았다. 직접 끓인 국물에 밥을 만 소머리국밥은 술 안주로도 좋고, 해장국으로도 훌륭했다.


    아침 드라마에선 숙취 해소제로 유난히 꿀물이 많이 나온다. 알코올 해독하느라 몸은 당분과 수분이 부족한 상태인데, 꿀물을 섭취하면 혈당이 높아지면서 숙취 해소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꿀은 해장에도 그만이다. 달기만 한 게 아니라 마시면 위장을 싹 감싸주는 듯한 느낌이 난다. 그래서 사무실 책상에도 늘 짜 먹는 꿀을 둔다. 술이 깨지 않을 땐 급히 꿀물을 타서 응급약처럼 처방한다.

     

    서양에선 우리가 꿀물을 마시는 것처럼 토마토주스를 찾는다고 한다. 토마토에 들어 있는 리코펜 성분이 알코올과 아세트알데히드 배출을 돕는다는 것이다. 토마토에는 비타민C도 풍부하다. 비타민C는 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토마토를 잔뜩 넣어 죽처럼 주스를 만들면 위도 든든하게 채워준다. 토마토주스를 만들 때 꿀을 몇 스푼 더해도 좋다. 믿거나 말거나. 토마토주스를 넣은 칵테일인 ‘블러디 메리’는 마침 해장술로 유명하다. 영국 여왕이었던 메리 1세가 청교도를 과도하게 탄압하면서 붙은 별명이 ‘블러디 메리’였다. 보드카를 베이스로 하고 토마토주스, 핫소스, 레몬주스, 우스터소스 등을 넣는다. 잔 가에는 소금을 묻힌다. 토마토와 레몬은 비타민C가 풍부하고, 소금은 부족한 전해질을 채워준다고 한다.

     

    사람이 백 명이면 해장법도 백 가지

    라면. 해장에 빠질 수 없는 단어다. 술 잘 마시는 사람은 라면을 안주 삼아 소주로 혼술을 하기도 한다지만. 뭘 먹든 꼭 탄수화물로 마무리해야 하는 한국인들은 고기를 구워 먹다가도 마지막은 라면 사리로 끝낸다. 이쯤 되면 음주 후 라면은 ‘국룰’ 같다. 개인적으론 후추와 빻은 마늘을 왕창 넣은 라면을 좋아한다.


    미국인은 치즈버거로 해장을 많이 한다는 말도 들었다. 술을 많이 마시면 위산 분비가 많아 속이 쓰린 증상이 심해지는데,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이것이 완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 마신 날도 분명 기름진 안주를 먹었을 텐데, 다음 날 해장으로 기름진 햄버거를 먹는다면? 지방간 예약이다. 치즈 폭탄 파스타나, 구운 빵에 체더치즈를 왕창 얹어 먹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일본은 느끼한 음식 대신 매실 절임이나 녹차밥 같은 개운한 음식으로 해장하는 편이라고 한다.


    ‘아아’파도 있다. 술 마신 다음 날 얼음 잔뜩 넣은 아이스아메리카노로 속을 개운하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안타깝게도 이는 좋은 해장법은 아니다. 술을 마시고 머리가 아픈 이유는 뇌에 있는 혈관이 확장됐기 때문인데, 카페인을 마시면 혈관이 확장돼 두통이 유발될 수 있어서다. 그리고 커피는 위산 분비를 촉진해 속 쓰림 현상을 강화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술은 됐고, 음식은 도저히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아아만 찾는다.


    기괴한 해장의 끝판왕은 해장술이다. 해장으로 쓰린 속을 다시 술로 푼다는. 고통을 고통으로 잊는 방법이다. 해장술은 몸에 안 좋다. 아직 간이 해독을 하지 못했는데 거기에 술을 끼얹으면 과로사할 것이 뻔하다. 놀랍게도 해장술을 마시면 잠시 숙취가 사라지는 것 같은 효과를 준다. 또 술을 마시고 해장술을 마시는 멤버는 보통 어제 만났던 사람을 복사-붙여넣기 한 것처럼 그대로다. 사이도 더 돈독해지고 술자리가 더 즐거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는 잠시 감각을 마비시켜서 숙취가 느껴지지 않는 거지, 실은 숙취는 담요 속에 숨긴 화투패처럼 고스란히 때를 기다리고 있다. 또 해장술에 중독되면 알코올 중독에 빠질 가능성도 높다고 하니 주의하자.


    이론적으로는 해장 음식이 정해져 있지만 실은 답은 없다. 아픈 건 본인만 느낄 수 있어서다. 어떤 사람은 샐러드 한가득, 또 어떤 사람은 시원한 냉면 한 그릇, 또 다른 사람은 초콜릿 같은 단것. 해장국 대신 꼭 순댓국을 먹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나만의 해장법을 가지고 있다는 건 꽤 부러운 일이다. 속을 풀 줄 아는 사람이 술을 마실 줄도 알기 때문이다. 아직 나만의 해장법에 정착하지 못한 ‘알쓰’는 오늘도 숙취에 괴로울 뿐이다.

     

     

     

    ✅ 글: 박준하(a.k.a. 박준돌). <농민신문> 기자이자 술꾼들과 소통하는 '술플루언서'. 직접 술을 빚고 군침 도는 안주를 만들지만 정작 소주 석 잔에 '꽐라'가 되고 마는 전통주 소믈리에. 인스타그램 @jundol_drink 유튜브 [준돌드링크TV]

    ✅ 출처: 취할 준비 - 알고 취하면 더 맛있는 우리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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