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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저 각자 자라는 속도가 다를 뿐 by 이소영
    아하 에세이 2024. 6. 11. 18:51

     

    어릴 적 명절이 되면 경기도 외곽에 있는 이모집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모집 뒤에는 낮은 산이 있었는데, 산 아래에는 소나무가 많았다. 이모는 추석마다 이 소나무 숲에서 주운 솔잎으로 송편을 쪄주었다. 대학생이 되어 다시 그 소나무 숲에 갔는데, 소나무 중 일부는 리기다소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나무는 한곳에서 잎이 두 개가 나지만, 리기다소나무는 잎이 세 개가 난다. 이들은 1970년대 황폐해진 우리 산에 식재된 속성수 중 한 종이다.


    속성수는 빠르게 자라는 나무를 일컫는다. 우리 산에는 리기다소나무와 아까시나무, 오리나무 등 속성수가 많다. 1960〜70년대 황폐한 우리 땅을 하루빨리 푸르게 만들어야 했고, 그렇게 심어진 나무가 이제는 아름드리나무로 커버렸다.


    지구에는 최소 6만 종의 나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종 다양성만큼이나 나무의 생장 속도 또한 다양하다. 누군가 “나무는 얼마나 빨리 자라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무의 생장 속도는 종마다 다를 뿐 아니라 같은 종일지라도 어느 위치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고 답할 수 있을 거다. 여기서 위치란 기후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따뜻한 기후에서 사는 나무는 추운 기후에서 사는 것보다 더 빨리 자라며, 북부 지방보다는 적도 근처 나무의 생장 속도가 더 빠르다. 기후는 고도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만큼 일반적으로 낮은 고도의 나무는 고산지대의 나무보다 더 빨리 큰다.


    그러나 애초에 느리게 자라는 종도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목이 그렇다. 주목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느리게 자라는 데다 수명도 길다. 죽어서도 천년이 간다는 것은 죽어도 그 티가 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주목을 씨앗부터 기르려면 발아하는 데만 2년이 넘게 걸리고 생장 속도도 느리다 보니, 일제강점기 일본 사람들은 우리나라 높은 산에 군락을 이룬 주목을 베어가기도 했다. 이들이 약용식물과 목재로써 유용한데 생장이 느려 씨앗부터 번식하기 힘들기 때문에 다자란 나무를 가져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속성수가 아닌, 생장이 느린 주목을 요즘 우리가 자주 접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주목을 가장 자주 만나는 곳은 산이 아닌 도시의 학교와 빌딩, 집(아파트) 앞 화단이다. 주목은 산에서 5미터 넘게도 자라지만, 도시 화단에서는 구형이거나 삼각형의 정형적인 형태로 전정(식물의 모양을 다듬는 일)되어 있다. 이들은 자라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특별한 관리 없이 가끔씩만 전정해주면 원하는 모습 그대로 있어준다. 무생물과 같은 생물. 인간은 느리게 자라는 나무를 숲에서 가져와 살아 있는 장식물로 이용한다.


    도시 어디에서든 자주 볼 수 있는 회양목 또한 느리게 자라는 대표적인 나무다. 회양목 역시 산에서는 3미터 이상의 자유로운 형태로 자란다. 이렇게 높이 자랄 수 있는 회양목을 도시로 가져온 것은 자라는 속도가 느린 데다 공해에 강하며 관리가 쉽고 사계절 늘 푸르기에, 공간을 구획하거나 차폐하고, 동선을 유도하는 식물로 유용하기 때문이다. 만약 회양목이 자라는 속도가 빠르다면 쉴 새 없이 자라는 잎과 가지가 우리가 지나는 통로를 막고 미관을 해쳐 자주 전정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다가 관리 예산과 인력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더는 도시에 회양목을 심지 않을 테다.

     

    봄에 묘목시장에 가면 나무를 사러온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나무를 고르며 꼭 이렇게 묻는다. “이 나무 빨리 자라나요?” 내 정원과 마당에서 하루빨리 아름드리나무를 보고 싶은 마음에 묘목을 고르는 사람들은 빠르게 자라는 나무를 선택한다. ‘속성수’라는 용어는 있지만, 느리게 자라는 나무에 관한 별다른 용어가 없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 유용한 것, 우월한 것은 빠르게 자라는 나무라 착각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 느리게 자라는 나무는 그 나무대로, 빠르게 자라는 나무는 그 모습대로 이용하고 있었다. 빠르게 자라는 나무라고 다 좋은 것도, 느리게 자라는 나무라고 나쁜 것도 아니다. 빠르게 자라는 나무는 금방 숲을 푸르게 만들지만, 수명이 짧고 목재가 약하며 재해에 쉽게 부러진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주목이나 회양목처럼 느리게 자라는 나무는 자라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수명이 길고, 목재는 치밀하다.


    생장 속도에 따라 종의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다. 그저 나무라는 생물 각자 자라는 속도가 다를 뿐이다. 생각해보면 인간 또한 모두 살아가는 속도가 다른데, 나무라고 다를 게 있을까 싶다.

     

     

    ✅ 글: 이소영. 식물세밀화가이자 원예학 연구자. 국내외 식물연구기관과 협업해 식물세밀화를 그리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미래문화유산대학원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이소영의 식물라디오를 진행하며, 서울신문에서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광주일보에서 이소영의 우리 지역 우리 식물칼럼을 연재한다. 지은 책으로는 식물의 책』 『식물과 나』 『식물 산책이 있다.

    ✅ 출처: 식물에 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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