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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작심삼일 실험실 by 김규림
    아하 에세이 2021. 1. 27. 09:43

     


     
    나는 다짐을 많이 하는 인간이다. 연초인 새해에도, 주초인 월요일에도, 하다못해 하루의 처음인 아침에도 새롭게 다짐을 하곤 한다. 지극히 개인적 감상이지만 다짐은 결심보다 조금 귀여운 면이 있는 것 같다. 결심이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라는 강한 의지의 뉘앙스라면, 다짐은 '기왕이면 해내고 싶다'라는 소망의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다짐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책상 위에서 작게 주먹을 쥐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수많은 다짐을 한 후 그것들을 다 실행하느냐고 하면 물론 그렇지 않다. 꾸준히 이어나가는 아주 소수의 항목도 있지만, 대부분은 찰나의 죄책감을 통과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어제만 해도 소비를 줄이자는 올해의 다짐을 뒤로하고 티셔츠를 충동적으로 결제했고(한겨울인데 반팔 티셔츠라니), 매일 한 강의씩 들으려고 연간 이용권을 끊은 강연 플랫폼도 접속한지 2주나 지났으며(무려 150달러나 결제했는데!), 관심 있던 분야를 제대로 공부해보자며 마음먹고 산 400페이지짜리 노트는 앞의 두어 장만 쓴 채 몇 달째 책장에 그대로 있다(이런 건 너무 흔한 일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다). 이 외에도 결연한 다짐으로 시작해 흐지부지 작심삼일이 되어버린 것들의 나열하자면 끝도 없으니 이쯤에서 멈추기로 한다.


    '작심삼일'이란 단어를 해체해보면 작심(作心), 즉 굳게 먹은 마음이 3일 안에 끝나버린다는 뜻이다. 굳이 변명하자면 마음을 자주 먹으니, 그 수에 비례해 포기 사례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작심삼일은 다짐이 취미인 나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작심삼일의 역사는 꽤나 길다. 학창 시절에도 다짐형 학생이었던 나는 시작한 것을 끈질기게 끌고 가는 뒷심이 약해 무엇이든 쉽게 그만두곤 했다. 대신 앞심(?)은 누구보다도 강해서 무엇이든 화이팅 넘치게 시작했는데, 상상 속에서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열정이 앞서 준비물부터 한가득 구매하고, 그 후 며칠간은 정말이지 밤샘을 자처해가며 불태우는 식이었다. 누가 봐도 '이러다 진로도 이쪽으로 가겠는걸?'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깊게 빠져드는 듯 싶다가도 얼마 못 가 급격하게 흥미가 떨어져 그만둬버리기 일쑤였다. 새로운 과목이든, 장소든, 악기든, 심지어 아이돌 덕질마저도 초반에 하얗게 불태우고 이내 열정이 사그라드는 삼일천하는 장르를 불문하고 계속됐다.


    하지만 이 모든 작심삼일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은 열정이 과다하게 넘쳤던 기간의 짧은 디깅(digging) 덕분에 겉핥기로나마 알게 된 잡지식들이 많다. 사실상 나를 구성하는 정보와 잔기술들은 이렇게 큰 포부를 안고 시작했지만 이내 멈춘 얕은 파고들기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작심삼일들을 통해 나는 계속해서 새로운 세계들과의 약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왔다. 깊숙이 알지는 못하더라도 필요할 때 기억에서 소재를 꺼내올 수 있는 상태가 되니,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은근히 쓸모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부터 앞서 구매한 장비들도 집 어딘가에 보관되어 비슷한 것에 다시 관심이 갈 때마다 요긴하게 쓰이곤 한다. 고작 3일 안에도 ‘언젠가 쓸데가 있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는 사실.


    작심삼일을 하도 반복하다 보니 이를 다루는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내가 가장 신경을 가장 많이 쓰는 부분은 실패로부터 온 자괴감에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지 않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흥미가 떨어지는 건 사람이라면 당연하다. 그러므로 실패 후 본인의 게으름과 의지를 탓하는 것보다는 더 잘할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해 주는 것이 더 생산적이고 효과적이다. 이를테면 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드는 도구를 새로 들인다든지, 뭔가를 새로 시작했다고 주변에 알리는 등 약간의 외부 환경을 조성하면 3일은 5일, 7일로 연장되기도 하고, 주변에 조력자가 생기기도 한다. 물론 그럼에도 실패하는 것들에 대해 '나중에 다시 해보지 뭐!' 하는 쿨한 마음도 필요하다. 무엇이든 첫번째 예열이 가장 오래 걸리니 이번에 시작한 것을 초벌구이 단계라고 치면, 언제든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여전히 시작만 하고 흐지부지 끝나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완벽하게 끝내지 않으면 좀 어떤가 싶다. 뭔가를 다짐한다는 것은 어제보다 오늘, 작년보다 올해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 아니던가. 포기했다는 것보다 시작했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어보면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 여정 속에서 길을 잃거나 방향을 바꾸더라도 오늘 내디딘 한 걸음이 내일 걸을 걸음의 동력이 될 거라고 믿는다. 때로는 그저 시작하고, 노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오늘도 내일도 작심삼일 실험은 계속된다.

     

     

     

     

     

     

       글, 그림 김규림

    문구인(文具人). 『도쿄규림일기』, 『뉴욕규림일기』, 문구라는 장르의 오랜 팬으로서의 이야기를 담은 『아무튼, 문구』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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