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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금 더 잘 살아보고 싶어서 by 김신지
    아하 에세이 2021. 2. 24. 12:10



    올해 1월은 좀 각별했다. 3주간 진행한 온라인 루틴 모임 덕분이었다. 소셜 살롱 ‘문토’에서 모임에 대한 제안이 왔을 때, 주제를 정한 뒤 모임의 시작일을 1월 4일로 하자고 했었다. “왜요?” 모임을 주관하는 매니저님이 물었다. “1월 4일은 작심삼일의 이튿날이거든요. 새해 다짐을 다들 못 지켰을 텐데 그날부터 이 모임으로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의미에서!” “헐, 저 방금 소름 끼쳤어요!” 모임을 어떻게든 성사시켜야 한다는 매니저님의 사명감이 담긴 리액션과 함께 첫 날 모임이 시작되었다. 

    모임의 주제는 ‘순간 수집 일기’였다. 하루를 보내며 오늘의 좋았던 순간을 딱 하나만 발견해 그룹 채팅방 게시판에 사진으로 올리고, 그에 대해 짧은 일기를 쓰는 모임이었다. 각자의 하루에서 주워올 순간을 ‘행복의 ㅎ’이라 부르기로 했다. 대단하지 않아도, 거창하지 않아도, 오늘 나를 웃게 한 순간을 하나만 찾아보는 것. 일기는 휴대폰 메모장 기준 10줄 이내로 짧게! 쉬워보였다.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새해 첫 월요일이었기에, 다들 희망에 차올라 내일 톡 게시판에서 만나자며 줌 모임을 종료했다. 

    사흘 동안은 모임이 순항하는 듯했다. 다 큰 어른들이 고단한 하루 속에서 발견해온 ‘ㅎ’은 어딘가 귀엽고 뭉클한 구석이 있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낮에 볕이 들 때 고양이들이 어디에서 어떤 자세로 지내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 오늘이 ‘소한’이라는 말에 엄마와 아빠가 옛날엔 물 묻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붙었다고 해서 아침부터 웃었다는 얘기, 밤늦게 퇴근하다가 동네 골목길로 ‘눈사람 투어’를 나섰다는 얘기…. 하루라는 시간 속을 바삐 걷다가 슬며시 미소 지었을 순간을 상상하다 보면 함께 웃게 되기도 했다.  

    문제는 나흘째부터였다. 모임 멤버들의 일기에 앓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1월이 직장인들에게 얼마나 바쁜 달인지 간과한 게 문제였다. 다들 신년 보고와 계획 발표, 예산 집행, 외부 미팅 등이 포진한 험난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거기다 회사를 옮기거나 이사를 한 사람들까지 있어 일기에선 점점 여유가 사라져갔다. ‘오늘은 정말 ㅎ을 줍기 힘든 하루였다.’ ‘밤이 되면 다들 무언가를 올릴 텐데 이러다 나만 ㅎ을 못 찾는 게 아닐까 초조했다.’ 일기엔 점점 그런 말들이 늘어갔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떻게든 했다. 같이 해서였다. 혼자 마음먹었더라면 분명 작심삼일의 이튿날부터 ‘ㅎ’ 대신 핑계를 찾았을 것이다. 아, 1월은 일단 너무 바쁘니까 2월부터 하자. 배부른 소리야, 바빠 죽겠는데 무슨 ㅎ이야. 다짐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아내며 스스로를 계속 봐주었겠지.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어서, 함께 좋은 순간들을 나누기로 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좋은 순간을 찾아내고 싶었고 그것에 대해 몇 줄 일기라도 쓰는 것으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모임의 마지막 날엔 첫날처럼 줌으로 화상 미팅을 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언가를 매일 꾸준히 해본 게 너무 오랜만이어서인지 마라톤을 함께 완주한 듯한 동료애마저 느껴졌다. 지난 3주에 대한 멤버들의 소회는 놀랍도록 비슷했다. 망설이다 시작한 일이 늘 그렇듯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2021년의 첫 스무 날 동안 ‘매일의 ㅎ’이 기록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쁘고 고단했던 하루였어도 잘 뒤져보면, 어김없이 좋았던 순간 하나쯤은 있었다. 한겨울에 냉면을 먹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동료와 눈을 마주치며 웃었던 순간, 정신없이 일하다 고개를 들었을 때 창밖으로 번지던 노을 같은 것들. 모임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를 스쳐 지났을, 기록으로 남지 않았을 순간들이기도 했다. 덕분에 2021년의 1월을 ‘그냥 바빴던 달’이 아니라 매일 다른 행복이 있었던 하루들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모임을 닫으며 멤버들에게 약속했다. 여러분과 헤어져도, 인스타그램 부계정에 계속 ‘순간 수집 일기’를 이어가겠다고. 다정하고 성실했던 1월의 친구들은 이 습관을 유지하고 있을까? 매일이 아니어도 좋으니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어떻냐고? 하루를 보내며 ‘어? 오늘의 ㅎ인가!’ 여겨지는 순간을 찍어두고, 일기는 사나흘에 한 번씩 몰아서 올리고 있다. ‘작심삼일 삼세번’ 요법이다. 사진을 전혀 찍어두지 못한 날엔 좀 봐주기도 한다. 중요한 건 ‘매일 해야 한다’는 규칙이 아니라 왜 이것을 하려고 했는가 하는 마음이니까.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의무감이 아니라 즐거움에서 나오니까.   

    얼마 전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22가지 방법을 모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라는 책을 펴낸 후로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매일 하는 것, 꾸준히 하는 것이 어려워서 늘 포기하게 된다고. 쓰다 만 노트와 일기장만 몇 권이나 되는데 어떻게 하면 기록을 이어갈 수 있냐고. 그 질문에 담긴 간절함을 느낄 때면, 에필로그에 쓴 문장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기록은 어디까지나 즐거워서 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나를 위한 일이니까요. 평범한 일상을 특별히 소중하게 여기기 위해 우리는 기록을 다짐합니다. 그러니 완전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을 가질 필요도,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너무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어요. 무리하지 않고 낙담하지 않아야 꾸준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게 편한 방식으로 기록하되, 오로지 나의 즐거움을 위해 지속하세요.”

    기록이란 단어를 습관이나 루틴으로 바꾸어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냥 살아도 될 텐데 우리는 왜 자꾸 다짐이란 걸 할까? 계획을 세울까? 조금 더 잘 살아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데리고, 더 마음에 드는 일상을 꾸려보고 싶어서. 그러니 누가 시켜서도 아닌, 내가 나를 위해 시작한 일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좀 더 느슨하게 실천해도 좋겠다. 잘 안 돼도 괜찮다. 매일 꾸준히라는 건 원래 어려운 법이니까. 게다가 우리에겐 매번 새로 시작할 기회가 있으니까. ‘작심삼일의 이튿날’마다 새 마음 새 뜻으로 시작하면 된다.

     

     


    written by 김신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출근하면 트렌드 당일 배송 미디어 ‘캐릿Careet’을 만들고 퇴근하면 주로 맥주를 마시며 에세이를 씁니다. 지은 책으로는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평일도 인생이니까》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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