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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웨이브를 춰봐요 by 도대체
    아하 에세이 2021. 8. 9. 10:49

     

    제가 대학생이던 시절, 봄마다 열리는 대학 축제 기간엔 각 과와 동아리들이 교정 여기저기에 천막을 펼치고 주점을 운영하곤 했습니다. 소주며 막걸리와 함께 파전이나 순대볶음처럼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음식을 팔았답니다. 가끔 학생들과 친한 교수님들이 주점에 방문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학생들이 손님이었죠. 주점 앞에 놓인 탁자나 아예 바닥에 깔린 돗자리에 옹기종기 앉아서 술을 마셔대곤 했습니다. 온 학교가 거대한 주점이 되는 기간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주점이 아니어도 학생들이 함께할 재미난 활동이 많았을 텐데, 아무래도 상상력이 부족한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어쨌거나 제가 있던 동아리에서도 주점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학교로 가는 제 마음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그날 낮에 막, 썩 좋지 않은 일을 겪은 참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점 앞에 깔린 돗자리에 상심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데 동아리 동기 둘이 다가왔습니다.

     

    표정이 왜 그래? 안 좋은 일 있어?”

    . 티 나?”

    티 나지. 무슨 일인데?”

     

    동기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속상해하고 있었는데, 양옆에 앉아 있던 동기들이 제 양손을 각각 꼬옥 잡아주는 것 아니겠어요? 생각지 못한 위로여서 뭉클해지려던 참에, 더욱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둘이 제 팔을 슥 들어 올리더니, 손을 잡은 채로 웨이브 춤을 춘 것입니다. 양손을 붙들린 바람에 꼼짝없이 춤을 추게 된 저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웃음이 터지고 나서 그날 저녁은 저도 속상한 마음을 잠시 묻어두고 축제를 즐긴 것 같습니다.

     

    그 후로 저에겐 기분이 안 좋을 때 웨이브를 추어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속상한 일을 겪고 울적할 때 우두커니 앉아 있다 보면 저 날의 기억이 떠오르곤 하더라고요. 손을 잡고 함께 웨이브를 추어줄 동기들은 더 이상 제 옆에 없으니, 슬그머니 혼자 두 팔을 옆으로 뻗고 웨이브를 추어보는 것이죠. 그때도 지금도 역시나 실없는 행동이긴 한데, 그 바람에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동기들과 첫 웨이브를 춘 이후로, 직장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고 지금까지 나이 들어오면서 제가 얼마나 많이 웨이브를 추었는지 모릅니다. 친구들을 만나서 함께 춘 적도 있고, 직장 회식 자리에서 모든 팀원들을 손을 잡게 하고 웨이브를 추게 한 적도 있고, 부끄럽지만 술을 많이 마셔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술자리를 가진 다음 날 생각해보니 그날 처음 만난 분들끼리 손을 잡게 하고 웨이브를 추게 한 장면이 떠올라 머리를 쥐어뜯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혼자 추었던 적이 가장 많네요.

     

    책상 앞에 앉은 자세 그대로 양팔을 펴고 웨이브를 추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 크게 띄지 않습니다. 설령 누가 보았다 해도 스트레칭을 하나 보군생각할 테지 웨이브를 추는구나!’ 하고 눈치 채진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것이죠.

     

    팔을 허우적거리다 보면 가끔은 이게 무슨 어처구니없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세상엔 더 어처구니없는 일도 많으니 이 정도쯤이야 양호합니다. 웃을 수만 있다면 오케이인 걸요. 쓴웃음이든 피식 웃음이든 일단 웃음이 나오면 성공인 것이죠. 어떻게든 한 번 웃고 나면, 다음 걸음을 옮길 힘이 조금은 충전되는 법이니까요. 저에겐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이 웨이브를 추는 것입니다.

     

     

     

    [웨이브를 춰보세요! 쉽습니다.]

    1.  두 팔을 옆으로 쭉 뻗습니다 .
    2. 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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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레터에서 도대체 작가의 <나로 사느라 고생이 많아요> 연재를 시작합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분명한 행복을 찾아내는 도대체 작가님의 이야기는 7월부터 12월까지, 매월 한 번씩 찾아올게요.

     

    글. 도대체

    한량 기질 아버지와 부지런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두 분의 중간이 되지 못하고 ‘게으른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한량’이 되었다. 개 ‘태수’, 고양이 ‘꼬맹이’ ‘장군이’의 반려인간으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쩐지 웃기는 점을 발견해내는’ 특기를 살려 작은 웃음에 집중하는 글과 그림을 생산하고 있다.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어차피 연애는 남의 일』 『그럴수록 산책』 등을 출간했다.

     

    지은 책 중에서 추천해요!

    『그럴수록 산책』

    걷다 보면 모레쯤의 나는 괜찮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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