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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의 작심삼일 by 김재식아하 에세이 2021. 6. 3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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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후, 알고는 있지만 친하지 않은 낯선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응? 뭐지? 이 친구가 왜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지?’ 라는 생각에 통화를 망설였다. 모임에서 종종 만나기는 하지만 직접적인 대화는 해본 적이 없는 터라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게 그 친구의 첫 전화는 부재로 남았다.
몇 주 후 일과로 정신이 없던 날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지난번 연락했던 친구였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도 전화를 받지 못한 게 미안하기도 하고 좀 불편하게 느껴졌다. 다음에 만나면 이야기하겠지 하고 넘겼는데, 나중에 다른 친한 동생에게 연락이 와 어제 연락을 받지 못한 친구가 내 걱정을 하더라고 했다. 동생은 내가 바빠서 연락을 못 받았을 거라며 둘러댔다고 했다. 그제야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음에 보면 잘 이야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쯤 그 친구로부터 세 번째 전화가 걸려왔다. 미안함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도 받지 않으면 모임에서도 어색할 것 같아 멋쩍은 웃음으로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 형님, 많이 바쁘신가 봐요? 통화하기가 너무 힘이 드는 거 아닙니까.
- 어.. 어.. 아니 요즘 정신이 없는데 전화한다는 게 그렇게 됐네. 미안.
어색했던 통화는 앞으로 종종 연락드리겠다는 말로 끝이 났다. 그리고 한 두 달 간격으로 꾸준히 연락이 왔다. 초기에는 나를 관리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이제는 그런 생각은 들지 않을 정도로 꾸준히 연락이 온다.
대학 시절 연락받을 전화번호를 남기거나 짧은 음성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삐삐라는 게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집 앞 슈퍼에서 천 원 짜리 하나를 깨서 동전으로 바꾼 뒤 공중전화에 서서 친구들과 선배들에게 안부 메시지를 남기고 들어갔던 게 생각이 났다. 처음에는 매일 같이 남기다가 나중에는 그 숫자가 점점 줄었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묻고 좋은 꿈 꾸라는 짧은 메시지였지만 매일 메시지를 남겨도 한 번도 답이 없는 사람이 있고, 몇 차례 답변을 하다가 대부분은 그마저도 없었다.
그때는 내 마음으로 그 사람을 생각하며 보낸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와 돌이켜 보면 그 사람들에게는 스팸같이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이것 또한 강요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때의 그 사람들도 나에게 먼저 안부를 물은 적이 없던 것처럼. 나도 지금의 그 친구에게 단 한 번도 먼저 안부를 물은 적이 없다. 사람의 관계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서 가까워질 수 없는 것 같다. 내 마음이 어떠하든 상대가 아무 생각이 없다면 둘의 교집합은 성립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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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오래된 친구 하나가 있다. 가까이 지내는 사이라기 보다 말 그대로 오랜 친구이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단짝이었다. 그러다 내가 전학을 가면서 방학 때만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커서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볼 수 있었고 연락은 늘 갑작스러웠지만 언제 만나든 편하고 반갑다. 그렇게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지는 않지만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연락이 와 내 얘기를 가만히 들어 준다.
가까운 친구와 오래된 친구는 다른 존재다. 서로의 거리나 만남의 횟수가 관계의 깊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물건은 새것이 좋고 사람은 오랠수록 좋다고 했던가. 어찌 보면 우리의 관계도 약간의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힘들 때 기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힘들 때 도와주는 게 진짜 친구라 믿는 사람도 있지만 힘들 때마다 기대지 않는 것 또한 진짜 친구가 아닌가 싶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과의 관계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관계의 끈이 많을수록 성공한 삶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관계의 끈이 많을수록 책임져야 할 사람의 수도 그만큼 커진다는 것이다. 남보다 나에게 집중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 관계를 위한 작심 삼회의 노력은 가능하지만 보통 별 소득이 없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건 내 곁에 있는 가족, 사랑하는 단 한 사람, 그리고 오랜 찬구 하나면 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쓸데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관계를 이어가려 노력하기 보다 나를 위해 그리고 내 곁의 정말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작심삼일의 노력을 삼일에 한 번씩 계속 이어 가는 게 어떨까.
글. 김재식
영화를 보는 것보다 음악을 듣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며, 살림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사진을 찍고 여행하는 것을 즐깁니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삽니다. 사람들은 이런 내가 부럽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늘 동경하며 삽니다.
출간한 저서로는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 『세 줄짜리 러브레터』 『단 하루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다』 『사랑하게 해줘서 고마워』가 있습니다.✨🎊🎡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 10만 부 기념 봄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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