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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즐거움의 징검다리 by 도대체
    아하 에세이 2021. 7. 14. 14:38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를 내고 첫 북토크를 할 때였습니다. 제 인생의 첫 북토크였던 데다가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무척 긴장했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겨우 이야기를 마치고, 이윽고 참석하신 분들과 대화하는 순서가 왔는데요. 그중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공연이나 전시회처럼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다니는 편이고 그로 인해 즐거워지는 것은 맞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이게 뭐라고라는 생각이 들면서 허무해지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이 들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질문을 기억하는 이유는 제가 썩 좋은 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잠깐 생각하고는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죠.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다니, 한심한 답변 아닌가요. 그런 답을 듣기 위해 질문하신 것은 아니었을 텐데요. 말을 하면서도 이건 좋은 답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재빨리 한마디 덧붙이려 했지만, 그 짧은 시간에 다른 답이 떠오르지 않은 바람에 결국 또 이렇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 두 번이나 말해 못을 박은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몇 개의 질문을 더 받았고 행사는 무사히 끝났지만, 그날 이후로 저는 그분의 질문을 두고두고 떠올리곤 했습니다.

     

     

    ⓒ Bucography

     

    그분이 말한 게 어떤 마음인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 티켓 예매 전쟁에 성공해 달려가고, 보고 싶던 화가의 전시회에 줄을 서서 들어가고, 맛집이라고 소문난 식당을 찾아가 음식을 맛보고, 새로 문을 연 특색 있는 가게에 들어가 이것저것 한참을 구경하고. 분명히 즐거웠지만, 그래놓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잖아요.

     

    이게 뭐라고 왕복 두 시간을 길에 쏟았나

    이게 뭐라고 한 시간이 넘게 땡볕에 줄을 섰나

    이게 뭐라고 여기까지 찾아왔나

     

    이런 생각이 꼭 대외활동에만 따라오는 것도 아닙니다. 덕질을 하느라 유튜브를 뒤지다가 새벽을 맞이한 후에도, 푹 빠진 미드의 전 시리즈를 열심히 다 본 후에도, 컬러링북 한 권을 꼼꼼하게 다 색칠한 후에도, 한참을 뚝딱거리며 열심히 요리해서 한 끼 식사를 막 끝낸 후에도 찾아오곤 하죠. ‘이게 뭐라고.’ 그러게요. 그런 생각이 들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딴에는 열심히 궁리해보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딱히 더 나은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오늘 다시 그 질문을 받는대도 여전히 일단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마음이 괜히 드는 건 아닐 거예요. 다 이유가 있으니까 머릿속의 이성이 이런저런 계산을 해서 지적하는 것일 테죠. 좋긴 한데, 이게 뭐라고 이 시간과 공을 들였냐고요. 그것은 아마도 그런 행위가 현실적인 보상을 안겨주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는 족족 돈을 벌 수 있다거나 경력에 도움이 된다면 또 달랐겠죠. 사는 게 팍팍하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막기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말이죠.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라는 말 다음에, 이런 말을 덧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즐거운 시간을 되도록 촘촘히 만들면 어떨까 싶어요.” 즐거운 일을 하고도 기어이 허무함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즐거운 일을 더 자주 하는 것이죠. 저는 그것을 즐거움의 징검다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개천이 있습니다. 저는 산책을 하다가 개천에 놓인 징검다리를 종종 건너곤 합니다. 그때마다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한답니다. 길고 곧게 뻗은 다리가 아니어도, 띄엄띄엄 놓인 돌을 밟고서도 얼마든지 개천을 건널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죠. 곰곰 생각해보면 제 삶도 그런 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차를 타고 달려 단숨에 건널 수 있는 널찍한 대교는 없지만, 간간이 놓인 징검다리를 밟아가며 강을 건너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밟은 돌 중에는 주변 사람들의 호의순전히 우연히 굴러온 행운처럼 스스로 놓을 순 없는 돌도 있었지만, 직접 놓으며 밟아온 즐거움의 징검다리들도 분명 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즐거웠던 하루의 끝에 저의 이성이 이게 뭐라고라고 운을 떼며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면, 나를 위해 마련한 시간을 잘 보내고도 시무룩해지는 대신에 이렇게 답하기로 했습니다. “뭐긴 뭐야. 오늘 하루 즐겁게 만들어준 일이지. 금방 또 즐거울 기회를 만들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봐.”

     

    즐거우셨다고요? 헛되지 않았어요. 우리는 오늘도 잘했습니다. 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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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레터에서 도대체 작가의 <나로 사느라 고생이 많아요> 연재를 시작합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분명한 행복을 찾아내는 도대체 작가님의 이야기는 올해 12월까지, 매월 한 번씩 찾아올게요.

     

     

    글. 도대체

    한량 기질 아버지와 부지런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두 분의 중간이 되지 못하고 ‘게으른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한량’이 되었다. 개 ‘태수’, 고양이 ‘꼬맹이’ ‘장군이’의 반려인간으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쩐지 웃기는 점을 발견해내는’ 특기를 살려 작은 웃음에 집중하는 글과 그림을 생산하고 있다.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어차피 연애는 남의 일』 『그럴수록 산책』 등을 출간했다.

     

     

    지은 책 중에서 추천해요!

    『그럴수록 산책』

    걷다 보면 모레쯤의 나는 괜찮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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