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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말 가게 주3일 근무의 기쁨과 슬픔 by 구달
    아하 에세이 2021. 4. 21. 08:35

    @nick-page-unsplash

     

     

    나는 프리랜서 작가이자 양말 가게 점원이다. 유튜브 〈문명특급〉의 재재 PD가 ‘연반인’(연예인+일반인)이라는 신종 직업으로 활약하는 것과 비슷하게, ‘랜반인’(프리랜서+일반 직장인)으로서 경제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이런 식이다. 월, 화, 수 3일은 집에서 청탁받은 원고를 쓴다. 목, 금, 토 3일은 양말 가게로 출근해 양말을 판다. 일요일은 쉰다. 정리하자면 3일 단위로 한 주에 두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는 셈이다.


    주5일 근무하는 보통의 회사원으로 8년가량 일했다. 다만 언젠가부터 퇴근하고 나서 글을 쓰는 데 취미를 붙였는데, 이 글쓰기라는 취미가 나의 직업을 드라마틱하게 바꾸어놓았다. 독립출판물을 세 권 썼을 때쯤 사표를 냈다. 생업 없이 글에만 집중해보고 싶었다. 물론 석 달을 채 버티지 못했고… 재취업하는 대신 커리어를 활용해 외주 일감을 구했다. 회사에 묶인 몸보다는 프리랜서 신분이 글쓰기에 더 집중하기 좋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실제로 신간 두 권을 썼고, 에세이 작가로서 살짝이나마 업계에 엉덩이를 붙이게 됐다(야호!). 문제는 불규칙한 수입이었다(시무룩…). 일정치 않은 프리랜서 수입에 의존해 몇 년을 버티는 사이 불안감이 쌓였다. 불안은 글쓰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즈음이다. 현재 일하고 있는 양말 브랜드 대표님에게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내가 쓴 《아무튼, 양말》을 인상 깊게 읽었다며, 곧 양말 가게를 오픈할 예정인데 판매직을 맡아주지 않겠느냐는 프러포즈였다. 처음에 대표님은 주5일 근무를 제안했다. 고심 끝에 주3일을 원한다고 말씀드렸다. 사흘은 밥벌이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글쓰기에 투자하는 형태로 일주일을 꾸려보고 싶었다. 그렇게 난생처음 내 의지로 근무일을 바꿔 써넣은 근로계약서에 서명한 지 올해로 꼭 2년이다. 양말 가게 주3일 근무에는 완전히 적응했다. 사실 그냥 적응한 정도가 아니라, 내 몸에 꼭 맞는 일자리라고 여기게 되었다. 바로 이런 기쁨들 덕분이다.


    첫째, ‘에잇 못 해먹겠네’ 싶을 때쯤 한 주의 업무가 마무리된다. 지독한 월요일과 혼란의 화요일을 보낸 다음날이 지긋지긋한 수요일이 아닌 불타는 금요일이라고 상상해보자. 바로 그 기분이다. 양말 가게는 토요일이 가장 바쁘다. 문어발도 모자라 88발 지네로 변신해 발발발발 매장을 누비며 양말을 진열하고 팔고 포장해야 한다. 어찌나 바쁜지 양말로 책 한 권을 쓸 만큼 양말을 좋아하는 나조차도 양말이 꼴 보기 싫어질 지경인데, 마감할 시간이 되면 거짓말처럼 양말과 다시 애틋해진다. 우리 이제 나흘 동안 안 볼 거니까.


    둘째, 작심삼일을 반복해도 민망하지 않다. 회사원 시절에는 운동이니 중국어 공부니 의욕적으로 자기계발 계획을 세웠다가도 사흘을 못 넘기고 때려치우는 의지력 약한 내가 싫었다. 주3일 근무를 경험하면서 깨달았다. 작심삼일은 초등학교 입학 날부터 시작해 장장 20년을 6일 연속 등교(나는 토요일에도 공부한 세대다…), 5일 연속 출근하며 각인되어버린 고정관념으로 재단했을 때나 게으른 행동이었다. 요즘은 양말 가게 일을 마친 날 밤이면 취미 삼아 새로 산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린다. 일주일에 달랑 3일 끼적이고 그 비싼 아이패드를 처박아두다니, 예전 같으면 스스로를 한심해했을 행동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밥벌이하는 날마다 그림을 한 장씩 그리다니 놀라운 성실함인걸.


    셋째, 작지만 소중한 사대보험이 나를 감싼다. 주3일의 규칙적인 노동으로 얻게 된 혜택은 주3일치 이상의 안정감을 안겨주었다. 다음 달 보험료는 무슨 수로 메꿀지 궁리하거나 국민연금의 피처링 없이 노년을 맞이하는 상상을 하느라 밤마다 베갯잇을 적시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책을 내면 제발 빵 뜨기를 바랐다. 잘 팔렸으면 했다. 하루빨리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같은 마음이기는 하나, 예전만큼 초조하지는 않다. 책의 판매고에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일자리를 따로 마련한 덕분이다.


    물론 빛이 드는 곳에는 그림자가 드리우게 마련이다. 주3일 근무가 안겨주는 슬픔도 없지는 않다. 가장 애달픈 건 통장 잔고다. 근무일을 이틀 줄였으니 산술적으로는 월급도 5분의 2만큼만 줄어들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깎였다. 기본급 외에 연월차 수당 등도 함께 줄어든 탓이다. 주3일 근무를 위해 경력을 포기하면서 연봉 자체가 낮아지기도 했다. 벌이는 소박해도 12월 연말정산과 5월 종합소득세신고를 둘 다 챙겨야 하니 약간 번거롭다. 급한 원고 마감이 없으면 일월화수를 황금연휴로 만들어버리는 타고난 게으른 천성도 나를 슬프게 만든다. 왜 나란 인간은 그토록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농땡이를 피우지 못해 안달인 걸까. 반대로 욕심만큼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속상한 날은 출근하는 3일이 그렇게 아까울 수 없다. 24시간을 쓰는 일에 몰두해도 모자란 실력으로 일주일의 반을 쪼개어 양말을 팔겠다고? 정신이 나갔군.


    그럼에도 목요일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양말 가게로 출근할 것이다. 매장을 열심히 쓸고 닦고 양말을 가지런히 정리한 다음 뿌듯해할 것이다. 나는 양말 가게 점원이라는 직업이 좋다. 왜 아니겠는가. 사흘만 일하면 나흘을 쉬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아직 설명하지 않은 주3일 근무의 장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일의 기쁨이든 슬픔이든 고민할 틈이 별로 없다는 것. 나는 누구이며 양말이란 무엇이고 직업은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 하는 실존적 의문이 고개를 내밀 때쯤이면 가게 문을 걸어 잠글 시간이다. 근무일과 함께 줄어든 건 월급만이 아니다. 일이 내 삶에서 차지했던 거대한 존재감도 옅어졌다. 덕분에 사회생활 13년 만에 처음으로 나를 먹여 살리는 밥벌이를 미워하지 않으면서 일하고 있다. 일과 물리적으로 멀어짐으로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요령을 터득한 것. 어쩌면 주3일 근무의 가장 큰 기쁨이 아닐까.

     

     

     

     

    글. 구달

    에세이스트. 일주일에 사흘은 양말가게로 출근한다. ⟪아무튼, 양말⟫ ⟪읽는 개 좋아⟫ ⟪일개미 자서전⟫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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