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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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점을 ‘매일’에 찍지 말고 ‘한다’에 찍자 by 이유미아하 에세이 2021. 5. 17. 17:37
작년 말이었나. 내가 운영하는 동네서점 바로 옆에 카페를 차린 언니가 음료 메뉴를 적어놓는 입간판을 살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냉큼 끼어들어 말했다. “언니, 사사. 칠판처럼 생긴 걸로.” 언니는 유독 쓰기와 그리기에 취약한 사람이었고 입간판을 사고 나면 그 일은 고스란히 내 차지가 될 걸 뻔히 알면서도 언니를 부추겼다. “그럼 네가 쓸 거야? 다른 카페처럼 음료 그림도 좀 그리고, 응?” 내 예상이 맞았다. 언니의 그림이 거기까지 그려지자 나는 조금 망설여졌지만 나의 큰 그림도 있었기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의 큰 그림은 무엇인가. 바로 공짜로 입간판 하나를 건지는 거였다. 그즈음 책방에도 칠판처럼 생긴 입간판을 하나 놓고 싶다 생각했었고 가격을 알아보니 만만치 않았다. 하루에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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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가게 주3일 근무의 기쁨과 슬픔 by 구달아하 에세이 2021. 4. 21. 08:35
나는 프리랜서 작가이자 양말 가게 점원이다. 유튜브 〈문명특급〉의 재재 PD가 ‘연반인’(연예인+일반인)이라는 신종 직업으로 활약하는 것과 비슷하게, ‘랜반인’(프리랜서+일반 직장인)으로서 경제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이런 식이다. 월, 화, 수 3일은 집에서 청탁받은 원고를 쓴다. 목, 금, 토 3일은 양말 가게로 출근해 양말을 판다. 일요일은 쉰다. 정리하자면 3일 단위로 한 주에 두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는 셈이다. 주5일 근무하는 보통의 회사원으로 8년가량 일했다. 다만 언젠가부터 퇴근하고 나서 글을 쓰는 데 취미를 붙였는데, 이 글쓰기라는 취미가 나의 직업을 드라마틱하게 바꾸어놓았다. 독립출판물을 세 권 썼을 때쯤 사표를 냈다. 생업 없이 글에만 집중해보고 싶었다. 물론 석 달을 채 버티지 못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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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이 좋다: 나를 위한 아침식사 by 임진아아하 에세이 2021. 4. 6. 20:45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인스타그램 기능 중 하나인 일명 ‘무물’을 자주 사용한다. 무물이라고 줄여 부른 다는 걸 “무물해줘서 고마워요!”라는 질문이 아닌 질문을 받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해당하는 기능으로, 나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는 작은 공백칸이 24시간 동안 열린다. 24시간 안에 질문에 대한 답을 스토리에 다시 올리며 모두와 공유한다. 질문자가 누군인지는 나만 알지만, 대체로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친구와 재밌자고 만든 인스타그램은 어느새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에 보이는 계정이 되었으니까. 그저 나와 살던 개인에서, 나를 이야기하는 개인으로 살게 된 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그러다보니 쉽게 질문해도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SNS에 일상 사진을 게시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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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일 풀이 by 백가희아하 에세이 2021. 3. 10. 10:05
한 달 전 신년을 맞이해 사주를 보러갔다.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네이버에 신년 사주 잘 보는 곳, 사주 예약, 사주 꼼꼼하게 봐주는 곳을 검색해 알아보기 바빴다. 괜한 말을 들으면 어떡하지? 알고보니 나 이번 해가 삼재의 시작이면 어떡해야되지? 뭘 물어봐야 하나? 사주 선생님에게 물어볼 나의 장래에 관한 질문을 메모장에 썼다. 무슨 말을 듣든 개의치 않아 봐야지, 설령 삼재라고 해도 난 절대 지지 않을 거야, 마음 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을 꼭꼭 씹으면서. 그럼에도 촌철 살인일 말들을 새겨 들으며 실이 될 법한 불행한 것은 되도록 피하겠다 생각하면서. 제발 올해만큼은 내가 해둔 결심을 착실히 이행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기길 바라면서. 1월만 가득 채운 다이어리에, 월 초 3일만 발휘되는 작심삼일의 아이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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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잘 살아보고 싶어서 by 김신지아하 에세이 2021. 2. 24. 12:10
올해 1월은 좀 각별했다. 3주간 진행한 온라인 루틴 모임 덕분이었다. 소셜 살롱 ‘문토’에서 모임에 대한 제안이 왔을 때, 주제를 정한 뒤 모임의 시작일을 1월 4일로 하자고 했었다. “왜요?” 모임을 주관하는 매니저님이 물었다. “1월 4일은 작심삼일의 이튿날이거든요. 새해 다짐을 다들 못 지켰을 텐데 그날부터 이 모임으로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의미에서!” “헐, 저 방금 소름 끼쳤어요!” 모임을 어떻게든 성사시켜야 한다는 매니저님의 사명감이 담긴 리액션과 함께 첫 날 모임이 시작되었다. 모임의 주제는 ‘순간 수집 일기’였다. 하루를 보내며 오늘의 좋았던 순간을 딱 하나만 발견해 그룹 채팅방 게시판에 사진으로 올리고, 그에 대해 짧은 일기를 쓰는 모임이었다. 각자의 하루에서 주워올 순간을 ‘행복의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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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아니면 뭐 어때 by 한 대리 작가아하 에세이 2021. 2. 10. 09:30
매 년 돌아오는 한 해 목표 수립을 위한 면담 시간이었다. 부장이 자기 앞에 가지런히 내려놓은 종이들 위에는 우리 부서원들 각자의 다짐들이 적혀있었다. 그중 유독 한눈에 보기에도 텅 비고 무성의해 보이는 종이가 바로 내 것이었다. 조금 머쓱해져서 공연히 귀를 긁어대는 나를 발견한 부장은 노트로 종이를 가렸다. 한 대리 올해 다짐은 참 심플하네. 일하다가 어려운 거 있으면 얘기하고요. 네… 도망치듯 자리로 돌아와, 내가 하는 말이라면 언제든 무엇이든 그렇다고 해주는 참을성 좋은 친구 연의 이름을 급하게 찾아 말을 걸었다. 너희도 한 해 시작할 때 업무 계획 같은 거 세우니? 어차피 맨날 똑같은 일 시키면서 무슨 계획을 세우라고 하는건지 모르겠네. 진짜 무의미하지 않아? 어쩐 일인지 연은 답이 없었다.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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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심삼일 실험실 by 김규림아하 에세이 2021. 1. 27. 09:43
나는 다짐을 많이 하는 인간이다. 연초인 새해에도, 주초인 월요일에도, 하다못해 하루의 처음인 아침에도 새롭게 다짐을 하곤 한다. 지극히 개인적 감상이지만 다짐은 결심보다 조금 귀여운 면이 있는 것 같다. 결심이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라는 강한 의지의 뉘앙스라면, 다짐은 '기왕이면 해내고 싶다'라는 소망의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다짐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책상 위에서 작게 주먹을 쥐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수많은 다짐을 한 후 그것들을 다 실행하느냐고 하면 물론 그렇지 않다. 꾸준히 이어나가는 아주 소수의 항목도 있지만, 대부분은 찰나의 죄책감을 통과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어제만 해도 소비를 줄이자는 올해의 다짐을 뒤로하고 티셔츠를 충동적으로 결제했고(한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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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일도 삼세번이면 by 구달아하 에세이 2020. 12. 16. 13:26
엊그제 떡국을 먹은 기분인데 어느새 12월이다. 예년이라면 연초에 세운 야심찬 목표들은 단 하나도 이루지 못한 채 나이만 먹을 내가 한심해서 꺽꺽 울 타이밍이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다. 모닝 루틴을 주제로 이 원고를 쓰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아침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다. 프리랜서인 덕에 기상 시간이 불규칙하고, 현대인답게 눈 뜨자마자 스마트 폰부터 들여다보는 습관이 늘 문제였다. 두 가지를 고치는 방향으로 모닝 루틴을 짰다. ① 오전 9시에 일어나기. ② 커피 내리기. ③ 커피를 마시며 《전쟁과 평화》 20쪽 읽기. 새해가 밝기를 기다릴 필요 없이 당장 내일부터 새롭게 태어나는 거다. 한 해의 끝에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생각에 의욕이 샘솟았다. 아침 9시에 울린 알람에 지체 없이 몸..